글을 쓴다는 것. 창작을 한다는 것은, 세상에 없는 것을 내어 놓는 많은 시행착오가 있어야 가능한 일인듯 하다.
생각하는 것은 물 위에 글을 쓰는 것이다. 그건 그냥 흘러가버린다.
돌 위에 글을 써야 한다. 그래야 남는다.
- 허우 샤오시엔
나의 상태를 체크할 때 좋은 지표 중 하나는 내가 소셜 미디어에 올리는 게시물의 빈도수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활동 그 자체보다는 기록에 더 중점이 있다. 내가 소셜 미디어에 공유하는 내용 다다수는 특별한 사건, 사고나 이벤트보다는 아주 사사롭고 작은 일상과 생각들인데, 이렇게 별것 아닌 듯 사소한 일상을 쓰거나 그리거나 사진을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언제나 마음에 적당한 여유가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또 게시물을 올리는 것은 시간을 들여야 하는 일이므로, 게시물의 빈도수는 내 삶에 심리적, 물리적 여유가 있는지에 대한 기준이 된다. 그러므로 꽤나 적절한 지표라고 볼 수 있겠다.
사람과 직접 만나 수다 떠는 일에 취약한 나는 좋은 이야기꾼은 아니다. 이야기를 재미있게 꺼내 놓는 재주도 없거니와 슴슴한 일상을 영위하고 큰 기복 없는 안정적인 삶에서 안도감을 느끼는 나의 이야깃거리는 늘 큰 변곡점이나 탈선 없이 잔잔히 흘러가는 일상 그 어딘가에서 머무르곤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당연하게 느껴지는 것들이 많다는 걸 발견할 때면 조금씩 서글퍼진다. 무언가에 익숙해지는 것은 물에 떨어진 잉크 방울처럼 순식간에 퍼져 나가기 때문에, 당연한 일들을 더 격렬하게 쓰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다.
여기서 격렬함은 '과장된 표현'보다는 '격한 성실함'에 더 가까운데, 삶의 다양한 면면을 더 자세히 관찰하며 기록하는 과정을 반복할수록 당연해 보였던 많은 것들이 그렇게 당여한 것만은 아니라는 걸 깨닫곤 한다. 미국의 유튜버 셰이 칼이 "인생의 비밀은 클리쎼라는 단어 뒤에 있다"라고 말하 ㄴ것처럼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진리와 비밀이 숨어 있다. 그것들을 발견하려면 열심히 관찰하고 붙잡고 써두어야 한다.
격렬한 기록이 가장 빛을 발하는 순산은 기억이 희미해졌을 때다. 당시에는 특별하지 않다고 여기던 것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속에서 잊히고, 존재했는지조차 아득해진다. 그럴 때는 선명히 남겨진 문장 한 줄이나 찍힌 사진 한 장이 얼마나 소중히 다가오는지 모른다. 당시에는 별생각 없이 한 기록들에 고마워지는 순간이다.
특히 해외 등 새로운 환경에서는 모든 것이 신기하고 자극적으로 다가온다. 그럴 땐 부지런히 영감을 기록해 두는데, 차츰 환경에 익숙해지면서 기록량은 눈에 띄게 줄어들고 만다. 해외 파견을 처음 나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첫 3개월 동안은 새로운 것들에 대해 미친 듯이 기록했지만, 환경에 적응하면서 나의 기록 생활은 금세 시들해졌다. '오픈빨'이 조금 더 갈 줄 알았는데 벌써? 서운해하며 하나라도 더 붙잡아 보기위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기 시작했더니 또다시 일상의 새로운 면이 보였다. 매일 지나가는 거리, 늘 만나는 사람들. 특별한 일 없던 일상을 기록하니 모든 것이 다 특별해졌다.
무탈한 삶에 만족하다가도 그것이 지루해질 때마다 우리는 계속 자극을 찾아 헤맨다. 하지만 특별하고 반짝이는 것들만 쫓기보다 삶의 당연한 것들을 성실히 붙잡아 두는 데 더 열과 성을 쏟아야겠다. 소셜 미디어 포스팅이든 노트에 쓰거나 그리는 글과 그림이든 스마트폰으로 가볍게 누르는 셔토든,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말을 빌리면 '돌 위에 글을 쓰는 일'이니까 그런 마음으로 오늘도 돌 위에 글을 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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