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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삶의 피난처 소셜 스낵

'소셜 스낵'. 낫선 단어이다. 이런 단어들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하나의 단어가 만들어지고 사람들 사이에 정착되어지면 그 단어는 힘을 얻는다. '소셜 스낵'이라는 단어가 일반적인 대중에 쓰이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는 나에겐 지금 이 공간이 '소셜 스낵'이다. '기쁘고 기억하고 싶은 조각들을 바지런히 그러모아 둬야겠다.'라는 저자의 이야기가 200% 공감하며 저자의 이야기를 옮겨 본다.

삶의 피난처 소셜 스낵

최근 '소셜 스낵 social snack'이라는 단어를 접했다. 임상 심리학자 가이 윈치 Guy Winch가 소개한 이 개념은 괴로울 때 힘이 되어 주는 물건이나 기억을 뜻한다. 읽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문구, 누군가에게 들으면 힘이 되는 말이나 받은 메시지, 성취를 이뤘을 때 적어 둔 일기 등이 '소셜 스낵'에 해당된다. 다친 상처에 즉각적인 응급 처치를 하는 것처럼 '소셜 스낵'은 본질적인 해결책까지는 아니더라도 빠르게 상처를 다독이고 추스를 수 있게 해 준다.

 

이름은 다르지만 내게도 '소셜 스낵 보관함'이 있다. 스마트폰에 폴더를 만들어 평생 기억에 남을 만하거나, 기억하고  싶은 대화나 메시지, 이메일들을 캡처해 차곡차곡 쌓아 두었다. 블로그도 말하자면 나의 '소셜 스낵 보관함'이다. 작지만 무언가를 해낸 순간, 즐거웠던 감정과 기억, 하찮아도 성실히 쌓아 올린 나의 발자국들을 이곳에서 가끔 꺼내 먹는다.

 

그러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일이 잘 안 풀릴 때 나는 자신에게 갖은 짜증을 부리거나, 질책하거나, 자기 부정을 해 버린다. 좌절 끝에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부정해 버리려는 순간, 나를 일으켜 세우는 건 이전에 해내고 인정받은 사소한 일이나 즐거웠던 기억들이다. 그러나 과거의 성취는 시간이 흐르면 금세 잊어버리고 만다. 더군다나 기억력이 썩 좋지 않은 나는 그 흔적을 남겨 두지 않으면 내가 어떤 것을 할 수 있는지도 떠올려 내지 못한 채 나의 마음에 상처를 준다.

 

그렇게 마음이 무력해지면 애써 모아 두었던 '소셜 스낵' 조각들까지 걷는 발걸음조차 무거워지지만 가까스로 힘을 내어 다가가 그것들을 살펴보면서 다시 깨닫곤 한다. 내가 무엇을 했고, 할 수 있는 사람인지. 내가 어떤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인지.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미래로 간 주인공이 과거의 자신을 바라보며 속삭이는 장면처철, 역으로 과거의 내가 '소셜 스낵'들을 통해 미래의 나에게 때로는 위로의 말을, 또 때로는 응원의 말을 속삭인다. "나는 나의 유일한 구원자"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그러고 보면 나를 구원하는 것은 지금의 나보다 과거의 나일 때가 더 많은 것 같기도 하다.

 

마음이 다쳐도 언제든 돌아가 치유할 곳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안심되고 기쁜 일인가. 앞으로도 수없이 나를 구할 '소셜 스낵'을 성실하게 모아 두는 일이 생각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걸 깨닫는다. 어쩐지 힘들 때마다 '소셜 스낵'보다 키보드 앞에 더 많이 앉게 되는 나지만, 기쁘고 기억하고 싶은 조각들을 바지런히 그러모아 둬야겠다.

 

 

출처 : 《매일의 감탄력》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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